파과
『아가미』, 『고의는 아니지만』 구병모 신작 장편소설
“지금,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고독하면서 아름답고, 잔인하면서 슬픈 이야기
방역업을 시작한 뒤로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 아닌 현재멈춤형이었다. 그녀는 앞날에 대해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었으며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눈을 떴기 때문에 연장을 잡았다. 류를 가끔 떠올렸고 그가 생전에 주의를 준 사항들에 자주 이끌렸지만, 제 몸처럼 부리던 연장으로 인해 손바닥에 잡힌 굳은살과도 같은 감각 외에는, 류를 생각하면서 온몸이 뻐근하게 달뜨고 아파오는 일이 더 이상 없었다. 그녀는,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 추천사–소설가 권여선
『위저드 베이커리』의 달콤쌉싸름한 유혹과 『아가미』의 신비한 슬픔으로 한국문학에 자기존재를 선명히 각인시킨 작가 구병모. 그런데 이상하다. 이 작가, 늘 신인 같다. 신인이 무서운 건 자기복제가 없어서다. 작가가 매번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쓰기 위해서 무엇을 무릅써야 하는지,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도 조금은 안다. 그런데 구병모는 정말 언제나 그걸 무릅쓴다. ‘파과’처럼 으깨진 영혼으로 살아온 여인의 고독하고 살벌한 삶을 그린 『파과』에서도 역시 그렇다. 아무것도 지킬 것 없는 삶의 사막과 무언가를 지켜내야만 하는 삶의 정글 사이에서, 나는 한동안 혼란스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