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다. 평범하다 말하는 삶의 전환기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사이에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했다는 점이다. 생명을 구해야겠다는 거창한 의도가 아니었다. 어쩌다 눈이 가고 마음이 쓰여 집으로 데려왔고 데면데면하게 지내다가 정이 들었다.
이 책은 미성숙했던 한 성인이 작고 약한 두 생명과 살아가면서 가까스로 괜찮은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서로를 단숨에 사랑하지 못했던 어른과 개가 십 년 넘게 시공간을 함께하면서 신뢰를 쌓기까지, 종이 다른 아기와 개가 서로를 보듬고 이끌어주기까지, 저자는 세 생명이 각자를 알아가고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을 때로는 깊숙이 개입한 1인칭 관점에서, 또 때로는 거리를 두고 타자의 시선에서 찬찬히 읊는다. 생명을 돌본다는 건 오로지 혼자였던 내 삶에 책임의 무게가 실리는 것과 같다. 아기와 개, 두 생명의 보호자로 살아간다는 건 ‘이제까지의 나’로만 살 수 없음을 의미한다.
말할 수 없는 이끌림에 안락사를 일주일 앞둔 어린 개를 데려온 저자는 개와 데면데면하게 지내다가 찬찬히 정이 들어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사이가 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겹겹이 쌓이는 시간의 틈에 희로애락을 바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언젠간 그 시간에 끝이 보이게 된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이제 더는 함께할 수 없음을 어느 순간 직감하게 된다. 개의 수명은 고작 15년 남짓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과정까지 한 사람의 삶 전반을 밀착해서 접하는 일이 흔치 않다. 그래서 개를 비롯해 수명이 짧은 다른 종의 일생을 본다는 건 삶의 다양한 단면을 미리 겪게 되는 셈이다. 유한한 삶 안에서 그 생명과 관계된 사랑, 기쁨, 짜증, 분노, 후회, 슬픔, 그리움 같은 여러 감정들을 비교적 단시간에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부대끼면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저자소개
하루에 배가 한 번 오가는 섬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시골 분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썰물처럼 도시로 빠져나왔다. 새벽 세 시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학교엘 다녔다. 학교에서는 늘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나면 소설책을 읽었다. 글 쓰는 학과인 줄 알고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나중에서야 ‘문예창작학과’와 착각했음을 깨닫고 한동안 방황을 했다. 동남아시아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치고 귀국 후에는 라디오 구성작가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인 남편, 그리고 1녀 1견과 함께 작은 집에서 살고 있다. 늘 갈망했던 ‘절친’이 셋이나 생겼음에 감사하며 이들이 바닥에 떨구는 보석 같은 말들을 주워 담아, 종이에 옮기는 일을 한다. 글 쓰는 사이트, 브런치에서 ‘목요일 다섯시’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이다. 한 주간 가장 지치는 목요일 다섯 시 쯤 읽으면 좋을 글을 쓰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1. 한 생명에게 신뢰를 얻기까지아기와 늙은 개 아기와 개의 시간 사랑, 그딴 건 개나 주라 그래 네, 1녀 1견입니다 개 발바닥 냄새를 맡는 날들외전1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 2. 아무도 착하다 나쁘다 하지 않는 시간재주 없는 개 당신의 품종은 무엇입니까 그 많던 늙은 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세상에 착한 개는 없다 3. ‘나의’라는 말의 의미공동육아 (feat. 늙은 개) 개 같은 날의 오후 오첩반상을 먹는 개 늙은 개와 여행하는 방법 외전2 유기견이 유기묘에게 4.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밤을 삼킨 개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나는 개에게 많은 말을 알려주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 우리의 민낯 5.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화요일을 호로록 먹어버린 아기 눈물 닦아주는 개우리에게 남은 시간우리가 잠시 떨어져 있다 하여도 오래오래는 무슨 색일까 외전3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에필로그 나를 기르고 키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