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오릭맨스티』는 더 나은 세속의 삶을 추구하려고 발버둥쳤던 남녀의 짧고 불우한 인생이 어떤 방식으로,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변화하는지를 담담히 풀어놓은 소설이다. 인간의 삶은 혹은 이 세상의 일이란 당사자 개인이 아무리 계획하고 노력해도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예기치 못한 외부의 일 속에서 완전히 다른 것으로 뒤바뀐다. 누구나 자기 인생은 자기의 것이라 생각하고 인생을 자기 방식대로 설계하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얼마나 구조 속에서 단독자는 허약한가.
우리가 열심히 쌓아올린 인생은 어느 한 순간, 단 한 번의 외부 충격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아무 잘못이 없이도, 어떠한 악의가 없이도 때로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러한 생의 아이러니를 최윤은 절제된 대화와 인물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단정하고 힘 있는 서술의 문장 속에서 촘촘하게 뽑아내어 독자의 눈앞에 보여준다.
더 길어진 수명, 더 높아진 생존 비용, 우리는 이제 더 많은 물질과 욕망을 ‘기본’, ‘평균’이라는 항목으로 묶어두고 있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꾸만 왜소해지고 시들어가는 한 인간의 실존에 이 소설은 더없이 냉정한 질문을 던진다. ‘여자’와 ‘남자’는 특별히 악하지도 않고 남달리 선하지도 않은 흔한 인물들이다. 적당히 세속적이고 적당히 성실하고 적당히 타협할 줄 안다. 그들의 목표는 허무맹랑하지 않았다. 이 소설을 읽는 당신과 당신 주변의 인간들처럼 그들도 그렇다. 그래서 그들의 파국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무엇이 아니다. 소설은 어른이 된 ‘나’가 더듬더듬 한국어를 배우고 자신의 부모의 사망 기사를 번역하고, 직접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부모의 사망 장소를 찾아가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 장소에 서 있는 ‘나’가 바라본 것은 붉게 저무는 석양, 우리가 잃어버린 언어, 오릭맨스티.
저자소개
아름다운 문체로 사회와 역사, 이데올로기 등 이성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다룬 소설을 쓰는 소설가 겸 번역가.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최현무이다. 1966년 경기여중과 1969년 경기여고를 거쳐 1972년 서강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교지 편집을 했으며, 1976년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978년 첫 평론 「소설의 의미구조분석」을 『문학사상』에 발표하고, 이후 5년간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의 프로방스대학교에서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고, 1983년 귀국하여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1988년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을 다룬 중편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문학과 사회』에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사회와 역사, 이데올로기 등 이성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다룬다. 『벙어리 창(唱)』(1989) 『아버지 감시』(1990) 『속삭임, 속삭임』(1993) 등은 이데올로기의 화해를,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 『회색 눈사람』(1992)은 시대적 아픔을, 『한여름 낮의 꿈』(1989) 『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1991) 『푸른 기차』(1994) 『하나코는 없다』(1994) 등은 관념적인 삶의 의미를 다룬 작품으로서 그의 소설은 다분히 관념과 지성으로 절제되어 남성적인 무게를 지닌 작가로 평가된다.
그의 소설은 언어에 대한 탐구이면서 현실에 대한 질문이고, 그 질문의 방식을 또다른 방식으로 질문하는 방식이다. 그는 우리를 향해 여러 겹의 책읽기를 즐기라고 권유한다. 그의 소설은 이야기의 시간적 순서를 따라가는 독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의 작은 부분들을 여러 층으로 쪼개서 그 이야기 전체의 의미를 독자 스스로가 완성하기를 기대한다. 그의 소설들을 즐기는 방법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사건의 선후관계를 의식 속에서 따라가는 것보다는 그 소설의 단락과 단락, 문장과 문장들 사이에 박혀서 보석처럼 빛나는 실존에 대한 통찰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의 소설에서 화자는 그 이야기 속의 상황과 운명을 이끌어가는 영웅적 능동성을 지니기보다는, 그 소설을 독자들에게 읽어주는 관찰자적 화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바로 그 화자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이야기할 때도 그 어조는 섬뜩하리만큼 냉정하다. 그 같은 냉정함은 현란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는 최윤 특유의 수사학에 포장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고통 속에서 길어올려진 미학의 위엄을 보여준다.
한편 최윤이 전통적 기법의 틀을 벗어나 다채로운 소설 문법을 시도하는 작가이면서도 유종호, 이어령 등의 대가급 평론가들로부터 이상적 단편소설의 전범으로 불리는 작품을 내놓은 것은 그의 소설론이 전통과 실험의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문학교수와 문학비평가로도 활동하며, 이청준의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해외에 소개하는 등 번역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1992년 『회색 눈사람』으로 제2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 『하나코는 없다』로 제1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저서에 작품집 『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1991)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92) 『속삭임, 속삭임』(1994) 『겨울, 아틀란티스』(1996) 등이 있고, 산문집 『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1994)이 있다.